사실 기껏해야 100년 남짓 사는 사람에게 있어 지질학적 시간은 상상 그 이상의 시간이다. 지질학적 시간으로 찰나에 해당하는 겨우 1~2천년전의 사실관계도 인간은 파악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시간의 스케일의 차이로 발생하는 패러다임의 차이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생물학을 통털어 문외한의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진화'는 직관적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 책은 새벽안개님의 소개로 읽어봤는데, 확실히 나같은 문외한에게는 좀 장벽이 높았다. 대학생때 기초 생물학조차 이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좀 후회된다) 생물학적 베이스는 거의 없는 나에게 있어서 허겁지겁 먹는 맛나는 식사모양으로 지적인 소화불량에 배를 잡고 뒹구는 짓을 하는 것 같다. 책을 들기 전에는 나름 열심히 보려고 마음 먹었지만 초심을 잃은 것 같다. 켁.

이 책은 진화론을 중심으로 그와 관련된 전반적인 이해와 다각적인 논쟁거리들 해설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일전에 소개한 서문에서 책의 저술목적을 잘 설명하고 있다. 진화론 내에서의 여러 논쟁이 있겠지만 사실 어떠어떠한 논쟁이 핵심인지 구체적으로 몰랐기 때문에, 논점을 쉽게 찾을 수 없는 부분도 많았다. 아무래도 굴드의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라는 책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될 듯 하다. 이 책은 다음에 읽어봐야 겠다. 그에 반해 문외한이 책 제목을 통해 연상할만한 내용인 진화론 자체가 참인지에 대한 직접적인 해설은 생략하고 있다. 이것을 기대하고 책을 읽는다면 조금 목적에 어긋날 것이라 본다.

책의 앞부분에는 다윈 전후로 사람들의 생명체에 대한 인식이 어떠했는지부터, 현재 진화는 어떻게 설명되고 있는지, 진화론에서 주요 의문점들은 무엇이 있는지(예를 들어 캄브리아 대폭발, 유성생식의 발생이유 등등), 어떤 자연 현상들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종분화나 대진화의 원리는 무엇인지, 마지막으로 영장류 및 인류의 진화까지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아는 것은 별로 없지만 줏어 들은 것은 있어서 예전에 읽었던 책들의 내용을 회상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에 파생하여 발생하는 의문들을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살짝 애석하다. 예를 들어 이전에 읽은 '눈의 탄생'에서는 캄브리아기 대폭발을 눈의 진화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 책을 읽을 때는 이것이 상당히 널리 받아들여진 학설인줄 알았으나, 이 책에서는 캄브리아기 폭발은 단순히 연대 측정의 착오로 여기는 관점에 더욱 무게를 싣는 느낌(p132)이다. 그 밖에 '기생충 제국'에서는 유성생식의 발생이유에 기생충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소개되어 있는데, 이 책에서는 그에 관해서는 일체 언급이 없다.(p206) 그 밖에 책 안에서 Great American Interchange(p265)나 Wallace Line(p303)과 같은 재미있는 토픽도 조금씩 언급되어 있는데, 지식의 자세한 내용을 찾아가는 재미가 솔솔하다. 책에서 수렴진화(p310, 435)에 대한 설명도 있는데 어제 구입한 내셔널 지오그래픽 2009년 6월호의 강돌고래 이야기에서도 언급된다. 크~ 책을 읽은 보람이 나는구만. ㅋㅋ

사소한 옥의 티 같은 것도 발견하였는데, 새벽안개님께서도 두 군데 지적한 바 있지만 그 외에도 내가 직접 찾은 것으로는 다음 두 가지이다.
1. Miocene의 한글 표기를 '미오세'와 '마이오세'로 혼용하고 있다. (p54그림, p58그림)
2. '흉내지빠귀mockingbird'의 영문표기명에 오타가 있다.(p59)
역자께서는 개정판에서 좀 보완해서 다시 발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반적으로 좀 어려웠지만 다양한 토픽을 통해 배울거리가 많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책의 앞부분에 있는 '총, 균, 쇠'의 저자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추천글로 서평을 마친다. 원래는 전문을 소개하려고 했지만, 치열 수술 후 치료중이라서 장시간 포스팅하기가 힘들다-_- 아 아파 죽겠네-_-

(전략) 에른스트 마이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나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1990년 나는 키클롭스(Cyclops) 산에서 실시된 두 번째 조류 조사 원정에 올랐다. 키클롭스 산은 열대섬 뉴기니의 북부 해안에 솟아 있는 높고 가파른 고립된 산이다. 이 조사는 무척이나 힘들고 위험한 활동으로 드러났다. 매일 가파르고 미끄러운 등산로에서 굴러 떨어질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고 빽빽한 밀림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었다. 춤고 습기 찬 기후에 노출되기도 했으며 원주민과의 충돌도 염려되는 상황이었다. 나는 원주민들의 도움에 의존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문제가 있었다. 다행히 내가 탐사를 시작할 무렵 뉴기니는 '평화기'에 접어들었고 나서 몇 년이 흐른 상태였다. 원주민 부족들간의 내전은 끝났고, 유럽의 방문자들 역시 이미 그들에게 친숙해진 터라 살해의 위협은 거의 잦아들었다. 그러나 키클롭스 산에서 최초의 조류 탐사가 시작된 1928년에는 상황이 달랐다. 1990년에 이루어진 나의 조사활동의 어려움을 상기해 볼 때 도대체 누가 그 최초의 탐사 활동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상상하기조차 힘든 막막함을 느낀다. 1928년 그 조사를 실시한 사람은 바로 23세의 청년 에른스트 마이어였다. 그는 동물학 박사 학위와 외과 대학의 기초 의학 과정(pre-clinical studies) 수료를 동시에 성취한 전도 유망한 청년이었다. 다윈과 마찬가지로 에른스트 역시 소년 시절부터 야외 자연사 탐사 활동에 엄청난 열정을 보였다. 그는 결국 베를린 동물학 박물관의 유명한 조류학자였던 에르빈 슈트레제만(Erwin Stresemann)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1928년 슈트레제만은 뉴욕의 미국 자연사 박물관, 그리고 런던 근교의 로스차일드(Lord Rothschild) 박물관의 조류학자들과 함께 뉴기니 섬에 남아 있는 조류학의 신비의 구름을 말끔히 걷어버리자는 야심찬 계획을 수립했다. 당시까지 유럽인들의 발길이 닿지 않고 오직 뉴기니 섬 원주민들이 건네준 표본으로만 존재를 알려왔던 비밀에 싸인 '극락조(birds of paradise)'의 본거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유럽 밖으로 한 번도 나가 본 일이 없었던 에른스트가 이 대담한 연구 프로그램에 선발되었다. 신비의 구름을 걷어내기 위해 에른스트가 맡은 임무는 뉴기니의 북부 해안의 가장 중요한 다섯 개의 산을 대상으로 전면적이고 철저한 조류 탐사를 벌이는 것이었다. 이 일은 조류 탐사자가 숲에 매복한 원주민의 습격을 받을 위험이 사라진 오늘날에도 거의 불가능한 임무로 여겨질 만큼 어려운 작업이다. 에른스트는 원주민 부족들과 친해지는데 가까스로 성공했지만 원주민들에게 살해당했다는 엉뚱한 공식 보고가 전해지기도 했다. 그는 말라리아와 뎅기열(dengue), 이질 등 풍토병의 공격을 받았고 어쩔 수 없이 폭포 속으로 뛰어 들어야 했으며 카누가 전복되어 익사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그는 결국 다섯 개의 산의 정상에 모두 도달했고 새로운 종과 아종을 포함한 방대한 양의 표본을 수집했다. 그의 철저한 수집 활동에도 불구하고 신비스러운 '사라진(missing)' 극락조의 표본은 단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이 실망스러운 발견은 슈트레제만이 내린 미스터리의 해법에 결정적 단서 역할을 했다. 그는 결국 사라진 모든 새들이 그 희귀성으로 미루어 현존하는 극락조 종들의 교배에 의해 탄생한 잡종이라고 결론지었다. (후략)

역시 집 나가면 개고생인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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