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시중에
우당 이회영 선생의 업적에 관한 서적이 두 권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중
이덕일씨가 쓴 '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이라는 책이 있으나, 이덕일씨는 역사를 전공하신 블로그 이웃분들의 평이 너무나 나빠서-_- 잘은 모르지만 왠지 피하기로 했다. 대신에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어째 홈페이지도 하나 없나..;;)에서 기획한 이 책을 고르게 되었다.
명문가 자제로 태어나 가산을 모두 정리하여 독립운동자금에 썼다는 이회영 선생은 요즘에는 눈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도 없는 '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것을 몸소 실천한 분이 아니셨나 싶다. 게다가 지배층 사람으로서 되기 힘든 아나키스트였다는 점에서 더욱 인상깊은 인물로 남는다. 독립운동사에서 아나키스트라하면 유명세 때문에 단재 신채호 선생이나 약산 김원봉 선생,
박열 열사 정도나 알려져 있지
유자명, 이회영,
백정기 선생 정도만 돼도 인지도가 낮아지고, 개인적으로 생이 궁금한
이을규,
이정규와 같은 분들에 관한 저서는 찾을 수 없다.
현재 우당 선생의 손자 중 한 명인
이종걸씨는 18대 국회의원으로서 유인촌 장관의
씨발 사건의 당사자이다.
자유와 자율, 평화를 주장하는 세력은 단합, 획일 및 호전을 주장하는 세력을 결코 이길 수 없다. 개개인의 분산된 힘 보다는 언제나 집단적 행동이 더 강한 위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개인의 자유의지, 평등을 추구하는 아나키스트는 집단적 행동 및 단합을 주장하는 민족주의자 또는 공산주의자들을 이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선이 결코 악을 이길 수 없는 이유와 비슷하다. 이것이 독립운동에서 제 3의 세력으로 수 많은 지성인들을 감화했던 아나키즘의 세력이 왜 숙청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아나키스트들은 인간의 선한 근원을 믿고 진정 불가능한 세상을 위해 노력한 아름다운 영혼들이 아닐 수 없다. 아나키즘의 구체적 실천방안은 사람마다 제각각 조금씩 다른데,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비슷하다.
아나키즘 독립 운동사에 관한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사료와 자료가 너무나 유실된 것이 많고, 연구된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 같다. 당시 아나키스트들의 사상적 견해를 알리기 위한 다양한 출판물이 있었으나, 남아있는 것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책 중간에
의열단의 문화와 분위기를 잠깐 엿볼 수 있는 구절이 있어 소개한다.
p148
죽음을 무릅쓰고 의열투쟁을 전개한 한국 청년들의 평상시 생활은 어떠했으며 어떤 꿈을 꾸고 있었을까. 장지락은 의열단원들이 마치 특별한 신도처럼 생활하고, 수영과 테니스 등의 운동을 통해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매일같이 저격연습을 했다고 회고했다. 그들의 생활은 명랑함과 심각함이 기묘하게 혼합된 것이었다. 언제나 죽음을 앞두고 있어 마음껏 생활하였던 멋진 친구들이며 러시아 출신 아가씨들과의 짧고 강렬한 연애를 즐기다 기꺼이 총과 폭탄을 들고 적지로 뛰어 든 불나방 같은 젊은이들. |
마치 영화
아나키스트를 연상하게 하는 구절이다.
이 책에서는 아나키즘을 '무정부주의'라 설명하지 않고 '자유연합주의' 또는 '자유공동체주의'라고 설명하고(p108) 있는데 매우 인상깊다. 이 말의 의미와 그의 사상적 측면을 엿볼 수 있는
김종진과 우당 선생과의 대화를 발췌해 본다. 중간에 많은 부분을 생략했으나 번거로와 일일이 표기하지 않았다.
p183-189
내가 의식적으로 무정부주의자가 되었다거나 또는 전환하였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다만 한국의 독립을 실현코자 노력하는 나의 생각과 그 방책이 현대의 사상적 견지에서 볼 때, 무정부주의자들의 주장하는 그것과 서로 통하니까 그럴 뿐이지, '각금시이작비(지금 깨달으니 과거가 잘못되었음)' 식으로 본래는 딴 것이었던 내가 새로 그 방향을 바꾸어 무정부주의자가 된 것은 아니다.
또 일부 사람들의 말과 같이 내가 존왕파였다면 물론 180도 사상 전환이라 하겠지만, 과거 한말 당시로부터 3ㆍ1 운동 직전까지 내가 고종을 앞세우려고 한 것은 복벽적 봉건사상에서가 아니라 한국 독립을 촉성시키려면 그 문제를 세계적인 정치문제로 제기해야 겠는데 그러자면 누구보다도 대내외적으로 영향력을 크게 가질 수 있는 그(고종)를 내세우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한 데서 취해진 하나의 방책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것은 대동단의 전협씨가 의친왕 이강을 상하이로 모셔가려던 생각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나는 본래 벼슬을 원치 않는 사람이오. 불평등한 신분제도도 본래 반대하던 사람이다. 독립을 하자는 것도 나 개인을 위한 영욕에서가 아니라, 전 민족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행복된 생활을 다 같이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니만치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알맞은 제도와 구조를 생각한 끝에 얻어진 결론이니까 이것은 나의 일관된 사상이오. 나의 독립운동의 방향이라고 나는 믿는 까닭에 이런 나의 생각이 무정부주의 사상과 공통된다고 하여서 나보고 사상적 전환을 하였다고 하는 그런 의견에는 나는 수긍할 수가 없다. 따라서 사심이 없고 공정무사한 민족적 양심을 지닌 사람이라면 당연히 나와 같은 주장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무정부주의자들의 방법론인 자유연합이란 것은 말은 그럴 듯 하지만 너무 산만하고 허황된 것이 아닙니까? 더욱이 우리처럼 독립운동을 하는 처지에서 볼 대 그런 이론을 가지고는 도저히 일제와 싸워 이길 것 같지 않습니다.
독립운동자의 견지에서 나는 자유연합이 가장 적절한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모든 운동자들이 자기 사상은 어떻든 간에 실제에서 무정부주의 자유연합 이론을 그대로 실행하고 있는 거다. 3ㆍ1 운동 이전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숱한 단체와 조직이 생겼지만 그들 사이에 단원 자신들의 자유의사에 의하지 않고 강제적 명령에 맹종하여 행동한 사람이 누가 있으며, 그러한 단체가 어디 있는가. 남들이 강철의 조직이라고 강제와 복종의 기율을 생명으로 하는 공산당이라 해도 그것은 적색 러시아 처럼 자기들의 정치권력이 확립된 이후의 말이지, 그들도 혁명당으로서의 혁명 과정에서는 운동자들의 자유합의에서 행동했던 것이다.
장차 우리가 독립을 전취한다면 어떤 사회를 건설해야 하겠습니까?
자유평등의 사회적 원리에 따라 국가와 민족 간에 민족자결의 원칙이 섰으면, 그 원칙 아래서 독립한 민족 자체의 내부에서도 또한 자유평등의 원칙이 그대로 실현되어야 하네. 국민 상호간에는 일체의 불평등, 부자유가 있어서는 안 되네. 자유 합의를 바탕으로 한 운동자들의 조직적인 희생으로 독립이 쟁취된 것이니가 독립 후의 내부적 정치구조는 권력의 집중을 피하여 지방 분권적인 자방 자치제를 확립해야 하고, 아울러 지방자치제들의 연합으로 중앙 정치 기구가 구성되어야 할 것이네.
선생님의 이러한 구상과 무정부주의 이론과의 관계는 어떠합니까?
무정부주의란 사회개혁의 원리네. 그 기본이 되는 자유합의 이론과 자유평등의 원칙을 살려서 그 사회 현실에 맞도록 실현하면 될 것이네. 우리가 지금 논의한 이런 모든 점들은 새 사회의 기본으로서 한국의 무정부주의자들도 대략 다 찬성할 것이네. 무정부주의는 공산주의와 달라서 꼭 획일성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 기본 원리를 살려 나가면서 그 민족의 생활습관이나 전통과 문화, 또는 경제적 실정에 맞게 적절히 변화를 가미하면 될 것일세.
우리가 그런 이념 아래 독립을 성취했다고 할 때, 이념을 달리하는 국가들과 국제 관계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무정부주의의 궁극적 목적은 대동의 세계, 즉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데 있는 것이니 각 민족 또는 각 사회군이 궁극적으로 하나의 자유연합적 세계기구를 만들어 연결해야 할 것이다. 각 민족 단위의 독립된 사회가 완전히 독립적인 주권을 가지고 자체 내의 문제나 사건은 독자적으로 처리하는 한편 다른 사회와 관계된 문제나 공동의 과제에 대해서는 연합적인 세계기구가 토의 결정하여 실행해 나가면 될 것이다. 그 단위 사회는 독립된 주권이 확립되어 있으니 한 국가가 아니겠는가 할 것이나, 그것을 국가라 하여도 무방하지만 세계연합의 일원인 까닭에 마치 미합중국의 각 주가 한 주이지 독립국가는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그러나 그 때에는 이미 한 사회라는 말과 한 국가라는 말이 동일 개념의 어휘가 될 것이다. |
몰랐는데
우당 선생의 기념관이 있었다. 여기 한 번 시간나면 찾아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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